오늘(1월 21일) 소풍은 “작가의 산책로 A코스” 5km를 걷는다
하영올레 2코스에 속해 있기도 한 ‘작가의 산책로 A코스’는 19점의 조형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거리 4.9km의 산책로랍니다.
오늘도 봄도 당당한 해설자다.등에 수놓은 호랑이가 눈에 띄는 오늘은 올레스테이에 머물고 있는 세 여성이 함께 작가의 산책로 A코스를 걷기로 했다
이중섭미술관 수선화가 빗속에 싱싱하다
먼 나무와 공생 관계인 지의류, 이끼와 같은 지의류는 나무에 붙어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나무는 지의류가 표피를 덮어 주므로 병충해와 벌레로부터 안전하다고 한다.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닌가.공생을 해야 한다.기생하면 곧 파탄의 지경에 이를 것이다
서귀포의 옛 생활 모습, 시내 집들이 한 켠에 널려 있는
서귀포 시민들이 각자 작은 돌에 소원을 적어 작가와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는 ~~서복공원
서복공원 휘호 서복공원 휘호는 2007년 한중 교류 15주년을 기념해 원자바오 총리의 부탁을 받았고, 서복전시관은 2003년 문화관광부 개발사업으로 개관했습니다. 이세기 회장이 취지를 설명하고 받은 원자바오 총리의 휘호가 바로 이 서복공원의 ‘사자’라는 것이다
물에 잠긴 장수 물속에서 부활 꿈꾸나
진시황과 서복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해설자진시황과 서복의 만남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신선과 불로장생약을 찾기 위해 수많은 방사(천문·의학·신선술·점 등을 연구하는 사람)가 모인 낭야대를 찾았다.이곳에서 신선과 불로장생약을 구해오겠다는 진방사 서복을 만난 진시환은 서복에게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동도로 출항하여 신선과 불로장생약을 찾아오라는 칙서를 내렸다.서복의 1~2차 동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1차 동도에서는 랑야 산(산둥 성 교제 미나미시)에 오르고 랑야대를 세우고 진나라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그때 칭발사의 서복이 징·시 팬에 바다 속에 봉래, 방장, 영주라 불리는 3개의 카미야마가 있지만 거기에 신선이 살고 있어서, 동남 계집 아이를 거느리고 불로 장생 약을 구하도록 하고 달라고 요청했다.이에 대한 진시황은 수천명의 동남 계집 아이를 선발하고 서복과 함께 신선을 찾고 동도를 출항하도록 했다.1차 동 섬에서 실패한 서복은 진시황의 징벌을 두려워하고 봉래산의 불로 장생 약은 구할 수 있지만 바다 안에 큰 교제어(용 같은 물고기)이 방해해서 접근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그리고 그는 활을 잘 쏘는 사수를 파견하고 교회어를 퇴치하는 것을 건의했다.이에 대한 진시황은 다시 서복에 동남 계집 아이 3천 여명과 오곡 종자와 여러 기술자들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고 신선으로 불로 장생 약을 찾도록 했다.제2차 동도에 나온 서복은 B.C.255년에 제나라에서 태어났고 연·제나라의 영향을 받아 신선 사상을 연구하고 진시황의 명령으로 동도에 나갔는데, 평원을 발견하고 나라를 세운 뒤 돌아오지 않고 최종적으로 일본에서 농·어업·의약·주거 문화 등을 하지메 말이야게 발전에 기여했다.서복은 한중일 우호 및 선진 문명의 전파로 매년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중국의 신선사상은 불로장생 서복동도의 역사적 배경은 신선사상의 유행이다. 중국의 신선사상은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존재를 믿고 그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는 사상이다. 또한 선약(不老長生藥)으로 장생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신선사상은 도가의 노자, 장자사상과 음양오행설, 불교, 유교, 무속의 신앙을 포함하여 정리·형성되었다. 한국의 신선사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신선사상을 볼 수 있는 집 중 5고분군 제4호분: 중국 지린성 가현대왕마을의 용과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 새는 하늘의 영을 전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중국의 신선 사상은 불로장수를 갈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한국의 신선 사상은 신선이 인간과 천계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민족 형성과 국가 창건 단계에서 형성되었다.금당포 조천암(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금당포는 불로장생약을 구해오라는 진시황의 명령을 받은 서복선단이 중국을 떠나 제주도에 처음 도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서복은 아침에 이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영주산(한라산)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주신 천신께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조천(朝天)’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 그러나 조천암은 고려 시대 조천관을 건립하면서 매몰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금당포는 ‘조천포’로 불리게 되었다.서귀포와 서불과지 서복은 영주산(한라산)에서 불로초(영지버섯백미금광초옥지지 등)를 구한 뒤 서귀포 앞바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서복이 이곳을 지나감)라는 글자를 새기고 서쪽(중국)으로 돌아갔다. ‘서귀포’라는 지명도 ‘서복이 돌아간 포구’라 불리며,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 전해진다.조선 말기 학자 김석익이 편찬한 파한에는 1877(고종 14)년 제주목사 백낙연이 서불과지의 전설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씨를 탁본하였다. 글씨는 12자인데, 글씨 획이 올챙이처럼 머리는 굵고 끝이 가는 중국의 고대 문자인 과두문자여서 해독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신선과 불로장생약을 찾아오라는 진방사 서복은 B.C.219(진시황 28)년 낭야대(중국 산둥성 교남시)를 출발했다.이 장면은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동도를 출항한 서복선단이 제주도 서귀포에 도착한 모습이다.영주산(한라산)과 불로초 제주전설에 의하면 영주산(한라산)은 신선이 놀던 산으로 신선들은 영주산에서 백록을 타고 가서 영주초를 백록에게 먹였다고 한다.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에 1609년 4월 8일 제주판관 김치가 백록담을 오르기 위해 존자암에 머물렀다. 다음날 판관김치가 존자암 주지 수정대사(129BT)와 함께 영실을 지날 무렵 수정대사가 판관김치에게 “영실 안에는 흰 사슴이 사는데 영주초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등산하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게 되면 이곳이야말로 신선이 사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영주초가 불로초로 여겨지는병마총에서 막 발굴된 장군같다~~ 우남두병마총에서 막 발굴된 장군같다~~ 우남두바로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들른 듯한 풍경이다자잘한 바위 글씨는 자연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것 같다삼매봉 남성대에서 본 유채꽃이 이곳 소나무머리에서도 활짝 피었다서귀포에 와서는 한기팔 서귀포에 와서는 누구나 한번쯤 물어 버린다 푸른 바다가 슬퍼서 울고 하늘이 푸르고 울어버리는 ‘시주카라, 시주카라, 소남자머리 고뱅이’ 바위틈에 앉아 우는 ‘시주카라, 바람이 불면 어쩌나’ ‘노을이 오면 어떡하지’ ‘파도는 달려와 무너지면서 섬 하나를 밀어 올린다’ 하얀 걱정이 드는 날, 가라앉은 바다의 먼 파도를 바라보며 울고, 사랑이 그런 만큼 수평선을 바라보며 울어버린다.하나의 하늘인데_원샷 여덟 개의 하늘인데 멀리 잊혀진 듯한 구석의 낮은 지붕이 보였다.한 하늘인데 붉은 해가 느릿느릿 가고 있다.가장 상징적인 그리운 하나의 낮은 지붕이하나의 하늘인데_원샷 여덟 개의 하늘인데 멀리 잊혀진 듯한 구석의 낮은 지붕이 보였다.한 하늘인데 붉은 해가 느릿느릿 가고 있다.가장 상징적인 그리운 하나의 낮은 지붕이작가의 산책로 작품12개와 아이들 – 그리다 정미진작가의 산책로 작품12개와 아이들 – 그리다 정미진작가의 산책의 질 작품14 시라나미 구로이와 박건주작가의 산책의 질 작품14 시라나미 구로이와 박건주참여 등산로 작품 16 ‘잠녀의 바다를 품다’ 조영진작가의 산책로 작품 18 매화 나들이 김 웨건작가의 산책로 작품 18 매화 나들이 김 웨건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한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별, 시클로에스가 서귀포에 온다 길을 알려주는 별, 노인성 서귀포에서만 볼 수 있는 별, 노인성을 보려면 어디로 갈까? 삼매봉 정상 부근에 있는 남성대가 바로 그곳이다.310억 광년 전 우주에서 쏘아 올린 별을 우리가 지금 서귀포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윤봉택이라는 조용한 남자의 끈질긴 집념 덕분이다. 만약 당신이 서귀포에 머무는 어느 날 밤 계절과 날씨가 맞아 남성리 남성대에 올라 먼 바다 수평선 부근에서 반짝이는 그 별을 보게 된다면 그 별을 다시 찾아준 한 남자에게 감사할 일이다.